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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성공적인 삶을 사는 싱글맘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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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현의 명사초대석] 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김소엽"


    

     본지에서는 이달부터 “명사초대석”을 신설,
     선구자적 삶을 살아온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사회지도층 인사를 대담하여, 그분들의 삶과 사랑, 철학적 소신을
     반추하는 교훈적 메시지를 독자 제위님께 전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인사로 「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대전대학교 석좌교수 김소엽(65) 시인을 만났다.
 

밤이 깊을수록, 어둠이 짙을수록 반짝이는 빛을 발하는 것이 별이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은 오직 한 점 빛으로만 발현하기에
인간의 예지적 상상력을 꿈꾸게 한다.
그 빛이 곧 꺼질 것과도 같은 시름 속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어 내며,
사위가 내려앉은 고요함 속에서만 빛나기에 무한 공간속 외로움을 잉태한다.
김소엽 시인에게 있어 별은 사무치게 사랑하는 님이다.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시인의 (여읜)님이고,
삶의 진정한 경배자로 추앙하는 믿음의 (예수)님이며,
끊임없는 문학에로의 갈구를 꿈꾸게 하는 (시를 생산하는)님이다.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세월이 가면
     그 모습 가슴 속에 살리라.
     눈빛만 마주하고
     어쩔줄 모르지만
     세월이 가면
     그 모습 가슴속에 안으리라.
     첫사랑 우리는
     언제나 서툴지만
     순백의 마음
     아픔 위에 피는 꽃은
     영원한 별이 되리.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세월이 가면
     그 사랑
     가슴에 꽃이 되리라.          
             
               -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전문


시인에게 있어 ‘별’은 ‘사무치게 사랑하는 님’

1987년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 (문학세계사 간)를 상재한 후
현대시단의 서정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여
십여 권의 주옥같은 시집을 엮어 낸 지금에 이르기까지
믿음과 시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두개의 수레바퀴였다.
 
소녀시절 롱펠로우의 시 <인생찬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하여
기독교 사상에 심취하게 되면서부터
신앙과 시를 성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단란했던 시인의 가족은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시인의 남편 고 양영재(전 연세대 영문과 교수) 선생께서
시대 전형의 40대 과로사로 갑자기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23년 전 고인이 48세였고, 시인의 나이 41세였다.
고인은 차기 연세대 총장감으로 물망에 오를 만큼 역량을 인정받은 학자였고,
돈독한 신앙을 가진 교회의 중심 장로였다.
벅찬 삶의 희망들이 크나큰 상실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하여야 했던 아픔의 시기를 감내해야 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자랑하던 부부에게 남겨진 딸 서윤양은
당시 열 두 살의 어린 무남독녀였다.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슬픔으로
날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지낸 것이 오년의 세월이라 했다.
어떻게 장례절차를 치르었는 지에 대한 경황도 없었으며,
그날 이후 삼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묘소를 찾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눈물로 지낸 삼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남편의 묘소 참배”

어린 딸 서윤이가
“엄마, 제발 이제 그만 슬퍼하세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아빠 뒤를 이을 테니 저를 미국에 유학 보내 주세요.”라고
하소연 했을 때 그때서야
“아! 그분이 남겨 준 사랑의 결실인 딸을 위해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는 생각이 들었다.

딸 서윤양이 아빠를 대신하여 성공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며,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두 식구가 생이별 하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었지만
한집에 사는 가족보다 더 많은 대화를
이메일로 때로는 국제전화로 나누며 끊임없는 사랑으로, 눈물의 기도로
감내해 온 지난날이 있어 지금 서윤양은 Michigan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 과정을 밟는 가운데
학부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닳아 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통해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천하를 다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며
     오늘 하루
     기쁨과 감격으로 살게 하소서...                

                 - <오늘을 위한 기도> 전


“기도의 끈을 놓지 마라, 엄마의 눈물로 키운 자식은 잘 될 수밖에 없다.”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시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상이며,
자신을 향한 고독한 채찍질이며,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를 반어법으로 노래한 것이리라.

올해는 시인에게 있어 특별한 전환기의 시기다.
20년을 봉직한 호서대학 교수직에서 정년퇴임을 했고,
시인으로 활동한 등단 30년을 맞는 해이며,
미국 MIDWEST 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수여 받은 영광이
함께 한 해 이다. 또한 호서대학을 퇴직한 뒤이어
대전대학의 석좌교수로 임명된 것이 그 새로운 전환점이다.

시인의 감성은 여리고 연약한 어린양의 영혼을 닮아 있다.
대학의 교수로, 우리 문단의 중견시인으로, 혹은 선교사업가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이다.
             
시인은 고독한 지식인이다.
지구 반대편에 하나뿐인 혈육과 생이별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남 보기에는 호사스럽다 할지도 모르나,
어린 딸의 의지를 꺾지 못해 결국 보낸 뒤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눈물지은 나날이 20년임에랴!
홀홀단신 감내 해야 했던 수많은 위기의 순간 중에서도
덜컥 암 진단을 받고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며,
날마다 통화를 하던 딸 몰래 수술과 치료를 받아 오던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오직 기도하는 가운데 극복한 시인을 누가 호사스런 직함으로 판단할 것인가.

그러한 절대 절명의 시간들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깊고 은밀한 시간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는 곧 시샘을 퍼 올리게 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시인의 순례자적인 삶이 이번에 펴내는
시집 <사막에서 길을 찾았네>에서 잘 나타나 있다.
  
     사막에 가서
     나는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네.

               <사막에서.1> 전문


     사막에서 길은 끝나고
     길은 사막에서 시작되네
     땅의 길이 없어지니
     하늘의 길이 열리네

               <사막에서.2> 전문


김시인은 사막이라는 그 막막한 공간에서, 그 팍팍한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의 길을 따라 순례자적인 삶을 살아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열정적으로 별빛을 따라 소망의 삶을 구가하며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극복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하나님 나라 문화 사역의 전도사로서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 무엇이 되어도
     그것은 네가 있기 때문
     내가 이 세상 살아갈 동안
     유일한 이유는
     바로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                 

                  <사랑하는 딸에게.5>중 일부


그의 이러한 열정적인 활동의 원천에는 사랑하는 딸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딸에게 아빠 없이도 참으로 좋은 엄마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일종의 가신 분에게 대한 최소한의 도리며 책임이라고 까지 생각하는
김시인의 기독교적 윤리의식에 기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김시인에게 한부모가정에 전하는 메시지를 부탁 했다.
“한부모가정보다 두려운 것은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 하는 것”이며,
“기도의 끈을 놓지 마라, 엄마의 눈물로 키운 자식은 잘 될 수밖에 없다.”
고 했다.


“한부모가정보다 두려운 건,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전문


김소엽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는
죽음이 종결이 아니라는 인식태도를 드러낸다.
죽음은 죽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쉼표가 되고,
남은 자들에겐 물음표가 된다는 표현들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초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신영 시인의 문학박사 논문집 중에서

이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인의 침대 머리맡에는
남편과 함께 찍은 커다란 액자 사진이 걸려 있다.
한 세상을 살면서 한 사람을 이렇도록 처절하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던가.
그녀의 시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를 통하여
아직 떠나보내지 아니한 님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시인을 지키고 있다.            


                
                 취재/글·금대현(본지 편집위원)



금대현 기자